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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진실과 허위
황장엽 회고록
소설 황장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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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경로

...원래 내가 (한국으로)망명을 계획했던 곳은 일본이다. 그러나 일본에 도착한지 하루도 안 지나서 나는 불길한 예감 속에 그 결행을 미루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다음 경유지인 중국에서 망명을 결행하게 되었다...

...나는 한평생 모험다운 모험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만은 내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모험을 감행하였다. 나는 그 같은 민족의 힘에 내몰려 북을 벗어나 남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도정에 서게 되었다...

...내가 망명을 위한 직접적인 행동에 들어간 것은 1997년 2월 12일 오전 9시경이었다. 그 시각 나와 김덕홍(조선여광무역연합총회사장)은 베이징 주재 한국총영사관 근처에 있는 백화점... 에서 망명안내자와 잠시 토의한 후 택시로 한국총영사관으로 들어갔다...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은 중국 외교부에 김덕홍과 나의 망명사실을 통보했다. 그때가 오전 11시 30분이었다. 오후 5시 30분, 한국정부가 김덕홍과 나의 망명신청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고 전해 들었다...

...중국정부는 1.000명의 무장경찰과 장갑차를 동원해 (북경 주재 한국총영사관)경비를 강화시켜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 점은 우리에게 행운이었다...

...하루가 지난 2월 13일, 북한 외교부에서 남조선당국이 나를 납치했을 경우에는 응당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고 (한국)대사관 직원이 알려주었다... 대사관의 모든 직원들이 우리를 극진히 보살펴주었고, 한국정부에서는 의사까지 파견하여 건강을 살펴주었다...

...(북한은 나의 망명이)중국정부의 공식발표로 (한국의)납치가 아니라는 것이 명백해지자 2월 17일, “변절자는 갈 테면 가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래서 나는 민족을 배반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김정일과 그 추종자들이라고 반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3월 7일, 첸치천 중국 외교부장이 우리 사건의 진상을 조사한 후 국제법과 국제관례에 따라, 그리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에 도움이 되도록 처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3월 14일, 중구의 리펑 총리는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 사건과 관련한 중국의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3월 15일, 한국정부와 중국정부의 협상팀이 우리를 (제3국에 1개월 이상 체류시킨다는 합의에 따라)필리핀으로 이송하는데 합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노력과 중국정부의 배려로 나와 김덕홍은 1997년 3월 18일 필리핀으로 떠나게 되었다...

...드디어 4월 20일 오전 일찍 필리핀을 떠나 그날 오후 서울에 도착했다...

...(대한민국 영공에 들어서며)엄호하는 공군전투기들의 위용을 바라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영광스러운 어머니 조국 땅은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늦게, 많은 사람들을 남겨두고 너만 왔느냐?”고. 이 죄를 대체 무엇으로 씻을 수 있을지...

...나를 뜨거운 동포의 정으로 끌어 안아주고 있는 (남한의)친애하는 국민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또한 나의 문제를 국제관례에 따라 처리해 준 중국과 필리핀 정부에도 감사를 드린다...

- 황장엽 회고록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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