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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진실과 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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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42회]
어쨌든 남한의 실정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채, 또 당국의 눈을 피해가면서 서둘러 쓴 글인 만큼 표현상의 한계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글에서 밝힌 우리의 통일전략의 기본사상에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다. 나는 지금까지 판단이 복잡하게 엇갈릴 때마다 양심이 요구하는 길을 택해왔고, 결국에는 늘 그런 결정이 옳은 것으로 판명났다. 그러나 이번만은 너무나..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41회]
제3의 길로는 조금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내가 양심적으로 살아 왔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고, 내 가족과 내 영향 아래 있는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었다. 그것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었다. 생각할수록 이 세 가지 길은 각각 장단점이 있어서 그 가운데 어느 것이 유리한지를 확정짓기는 어려웠다. 내 성격으로는 제3의 길, 즉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가장 ..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40회]
작은 나보다 큰 나를 위해. 나는 사태가 심상치 않게 전개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름의 결단을 내리기 위해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을 계속 추종한다는 것은 역사와 민족 앞에 돌이킬 수 없는 죄과를 범하는 것임이 명백했다. 나는 철이 들 때부터 이제껏 남이 오해할 만한 행동은 더러 했지만 양심을 저버린 일은 전혀 한 적이 없었다. ..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39회]
남으로 오기 얼마 전에 김일성대학 철학부에 나가보았더니 학생들의 도덕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남학생이 여학생을 공공연히 발로 차거나 폭행하는가 하면, 도적질이 너무 흔해 도저히 단속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선생의 물건을 훔친 학생을 알면서도 그가 중앙당 간부의 자녀라고 해서 야단도 못치는 일까지 있었다. 학생간부들이 학생들에게 술이나 담배, 돈을 가져오라..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38회]
나는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된다고 했다던 어느 프랑스 왕비의 얘기와,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굶어죽는다고 보고하자 왜 꿀을 안 먹느냐고 했다는 어느 러시아 황제의 일화가 생각났다. 나는 이 초지조성 사업만은 도저히 찬성할 수 없어, 우선 시험적으로 경험을 좀 쌓은 다음 전면적으로 착수하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비서들은 위대한 장군님의 지시이기 때문에 당장..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37회]
식량난이 심해지면서 사람들이 무더기로 굶어죽어 갔다. 평양의 경우도 중심가만 조금 벗어나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사람들이 배낭을 멘 채 식량을 구하러 나서는 바람에, 교외의 장마당으로 가는 길이 사람으로 가득 찼다. 산기슭에서는 사람들이 풀을 뜯느라 기어 다니고 있었으며, 물이 고여 있는 곳은 조개나 물고기를 잡으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평양은 그래도 지방..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36회]
북한을 망치게 한 수령절대주의의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강하게 느꼈다. 1996년 여름, 나는 태국과 인도의 여러 정당들과 관계를 발전시킬 목적으로 두 나라를 방문하게 되었다. 나는 김덕홍을 만나기 우해 기차로 선양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비행기 편으로 태국을 가려했다. 해외출장 때면 나는 대개 비서 개인자격으로 김정일에게 보고를 올리곤 했으나, ..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35회]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는 아무리 옳은 말일지라도 누구한테나 쉽게 하지 못한다. 나 역시 가슴에만 이런저런 분노와 원통함을 담고 있을 뿐, 가족에게조차 아무런 말도 못한 채 겉으로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일을 해야 했다. 어쨌든 김정일은 그 토론회에 대해 매우 흡족해하며 측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황 비서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조국인 러시아에서 주체사상을..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34회]
당시 러시아에 유학중이던 군사계통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반김정일 조직을 결성했는데, 그 가운데는 간부자녀들도 꽤 있다고 했다. 인민무력부 보위사령부에서는 이 조직에 참가한 사람들을 예외없이 모두 총살하고 있고, 거기에 일반 대학생들도 상당수 연루되었기 때문에 계속 조사중이라는 소문이었다. 나는 인민무력부장 최광에게 과학원에도 그 사건에 연루된 자가 있느냐고..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33회]
나의 고민은 더욱 커져 갔다. 그래서 암에 걸려 죽는 사람을 보면 나는 왜 암에도 걸리지 않는가 하고 원망했으며, 병으로 사망한 제자를 문상 가서는 내가 너무 오래 살아 부끄럽다고 말하곤 했다. 나 역시 대부분의 주민들처럼 때때로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전쟁이라도 일어나 이놈의 세상, 빨리 끝장이라도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질 때가 있었다. 1996년 2월,..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32회]
1995년 말경 나는 영국과 프랑스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베이징에 들러 김덕홍과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남한 기업인들과 금강산관광문제를 협의했다. 그즈음 나는 덕홍과 만나기 위해 해외출장 때는 가능하면 베이징을 경유했다. 베이징과 평양 간은 비행기보다 주로 기차를 이용했는데, 그 이유는 선양을 거치기 위해서였다. 선양에는 재단이 운영하는 지부가 있었고..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31회]
1995년 8월 15일은 해방 50돌이 되는 날이었다. 기념행사를 함흥에서 열기로 하여 간부들이 모두 기차로 떠나고, 나와 양형섭만 남아 남한에서 오는 학생대표를 마중하는 환영대회에 참가했다. 우리는 그 행사를 마치고 나서 밤차로 함흥으로 갈 예정이었다. 나는 남한에서 온 두 학생을 환영해주었다. 그러나 내 양심은 그게 아니었다. 그들과 악수를 하면서도 이..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30회]
코펜하겐 토론회에는 정통적인 마르크스주의파들이 참가했지만, 개혁·개방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일찍이 나와 함께 공부한 옛 친구들을 비롯하여 많은 학자들과 러시아 공산당 국제비서 등이 참가했다. 그 국제비서는 고르바초프가 총서기로 있을 때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청년사업담당비서를 한 바 있는 똑똑한 젊은 간부였다. 나는 그에게 조용히 마르크스..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29회]
덕홍은 재단 사업을 하며 해외에 나가 여러 지역의 교포들을 만나고 남한의 기업가들도 접촉하는 과정에서 더욱 더 내 사상의 정당성을 공감하게 되었다. 그의 사상적 발전은 나도 놀랄 정도로 빨랐다. 1994년에도 식량이 모자라 인민들이 굶주렸는데, 그래도 사람들이 무더기로 굶어죽었다는 소문은 없었다. 그러나 95년에 들어서자 사정은 급속도로 달라졌다. 평안북도..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28회]
나는 외화를 벌려면 국가보위부를 끼고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국가보위부가 우리의 외화벌이를 적극적으로 돕도록 김정일의 비준을 받았다. 세계 각국의 주체사상 선전기지를 한데 묶어 사업을 하려면 국제재단을 만들어야 하는데, ‘주체재단’을 등록하기 위해서는 출연금이 필요했다. 그래서 자금을 걱정하고 있는데, 우연히 주체사상 신봉자인 라오스의 한 젊은 사..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27회]
나는 이제는 김일성보다 후계자를 더 내세워야 한다고 강조했으나, 그 누구도 이를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때부터 김정일에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라는 호칭 대신 ‘위해한 장군님’이라는 칭호를 더 많이 붙이게 되었다. 당내에서도 대남부서에서는 ‘최고사령관’이라는 존칭을 공식문건에까지 쓰기 시작했다. 김일성의 70회 생일 때, 그에게 ‘대원수’칭호를..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26회]
김정일은 이따금 중요한 문제가 있으면 나에게 의견을 묻는 경우는 많은데, 나는 그럴 때마다 그를 추켜세워 주었다. 그러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비서들의 좌상인 황 비서의 의견을 물어봐야 할 것 같아서···” 언제인지는 기억에 없지만 김경희가 이런 말을 했었다. “아첨하는 사람은 많지만 진심으로 믿을 만한 사람이 없어서 오빠는 고독해합니다.” 나는..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25회]
김정일이 다치고 얼마 있지 않아 오래도록 절교상태에 있던 김경희가 내 아내에게 울면서 전화를 걸었다. 내용은 오빠 때문에 속이 상한다는 것이었다. 짐작하건대 아마도 김정일이 낙마 후유증으로 죽게 되면 의지할 곳이 없어질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어쨌든 김정일은 상당히 오랫동안 나타나지 못할 만큼 심한 상처를 입었던 것이다. 1994년이 되자 김일성은 겉으..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24회]
김일성의 죽음1993년 내가 국제비서에 재임명되면서 김기남도 선전비서에 임명되었다. 나는 그에게 사상이론문제위원회 위원장직을 넘겨주겠다고 김정일에게 건의했다. 그때까지는 선전비서를 김정일이 겸직하고 있었으나 이제 김기남으로 임명한 상황에서 내가 그 위원장직에 있는 것은 적당치 않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내가 주체사상담당비서이므로 위원장직을 그대로..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23회]
권력의 중심으로 다시 돌아온 후의 내 생활은 초대소에 있을 때와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집에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들어갈 뿐이었다. 나는 오랜 습관으로 와이셔츠나 양말 등 다림질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내가 직접 빨았고, 자잘한 바느질도 했다. 아내는 나에게 궁상을 떤다고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그것도 건강에 필요한 하나의 운동이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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